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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마음이 흔들리고 근심함으로써 마음바탕을 가리우는 도거개(掉擧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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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현선원 작성일14-08-13 15:22 조회2,7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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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거(悼擧)는 공연히 들뜨고 소란스러운 정신상태를 가리킵니다.

곧 번뇌망상 때문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산란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 아름답고 추하고를 끊임없이 분별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잊은 채 공연히 이 일 저 일에 관심을 갖고 시비를 논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분별과 시비는 내 인생의 행복과 해탈에 조그마한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세상사를 분별하고 시비를 논하며 살다보면 우리의 일은 끝이 없어지고, 안정을 얻지 못한 채 끝없이 비틀거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말라야의 설산(雪山)에는 '실단'이라는 집 없는 새가 살고 있었습니다.

낮이 되면 실단새는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다니면서 즐겁게 놀지만, 밤만 되면 오돌오돌 추위에 떨면서 결심을 했습니다.

"아이 추워. 내일은 반드시 집을 지어 따뜻하게 잠을 자야지."

그러나 날이 밝으면 간밤의 고생과 다짐을 모두 잊어버리고, 다시 노래하고 과일을 따먹으며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밤이 되면 어김없이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습니다.

"내일은 놀지 말고 일어나자마자 집부터 지어야겠다. 바닥은 단단한 것으로 하고 벽은 길상초로 바르고 지붕은 커다란 잎으로 잘 덮어서 좋은 집을 지으리라. 그럼 이 추위의 고통은 면하겠지."

하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어제와 똑같이 반복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실단새는 평생동안 집 한번 지어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 실단새의 삶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괴로움이 찾아들면 이 한 고비 넘긴 다음 멋있고 튼튼하고 안락한 '집'을 만들어 살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그 고비를 넘기면서 다시 바깥 경계를 쫓아 정신없이 살다가 죽어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럼 이와 같은 인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느님에게 있습니까?

부처님에게 있습니까?

부모에게 있습니까?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오직 '나'의 책임일 뿐입니다.

'나'의 번뇌가 '나' 스스로를 흔들어 무상한 이 세상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일은 무엇이 만들어낸 것일까요?

바로 중생의 번뇌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은 끝이 없고, 끝없는 번뇌가 만들어낸 세속의 일이기에 중생들은 쉽게 놓아버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런 저런 잔꾀를 내어 끝없이 계획하고 일을 저질러 버립니다.

 

한 예로 본분에 충실하고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도 돈이 생기면 '이것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쓸까?' 하면서 끝없는 궁리를 펴게 됩니다. 평소 '돈을 벌면 멋있게 보시하리라' 결심했던 사람도, 돈이 다소 모이고 나면 '이 돈을 한번 굴려 더 큰 돈으로 만들어서 보시해야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번뇌의 일종인 꾀는 간사하기 그지없어서, 아무리 '이것만하고∼을 해야지' 하고 결심해보아도 꾀에게는 당해 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도거, 곧 번뇌망상을 잠재우는 일은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쫓아가지 말고 마음의 고삐를 잡아 본분으로 돌아가서 살아야 합니다.

 

한 승려가 도를 닦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가 참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참선을 하기 위해 앉기만 하면 어찌나 번뇌망상이 들끓는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날 세속에서의 아득한 경험까지 되살아나 고요한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나무꾼이 그 산으로 나무를 하러왔습니다.

나무꾼은 톱으로 나무의 밑둥을 슥슥슥 자른 다음, 나무가 쓰러지자 밧줄을 나무 몸통에 묶어 끌고 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여기 걸리고 저기 걸려 잘 끌려가지 않았습니다. 나무꾼은 조금도 미련 없이 도끼로 나뭇가지들을 다 잘라버렸습니다. 그러자 둥치만 남은 나무가 나무꾼이 이끄는 대로 줄줄줄 잘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스님은 무릎을 쳤습니다.

"옳거니! 바로 저것이구나. 번뇌망상의 가지에 대한 집착부터 끊어버려야 한다. 여기저기 걸리는 번뇌망상의 가지를 일일이 다스리려 하면 어느 세월에 도를 이룰 수 있겠는가? 이제까지 나는 일어나는 번뇌망상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련하게 좇아가지 않으면 번뇌망상을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는 법! 오직 원둥치에 마음을 모아 일심정진 해야 한다."

그 뒤 스님은 원둥치를 잡고 공부하여 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든 행복과 해탈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를 원하면, 무엇보다 먼저 지금 이 자리에서 본분으로 돌아가 정진해야 합니다.

불자는 불자의 길로, 아버지는 아버지의 위치로, 주부는 주부의 자리로,

승려는 승려의 본분인 도닦는 일과 중생교화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진해야합니다.

 

본분의 정진을 통하여 번뇌망상의 도거개(悼擧蓋), 가만히 있는 것을 공연히 뒤흔들어 스스로의 참모습을 가리운 이 도거개를 벗겨버려야 합니다.

이 도거개를 벗겨버릴 때 행복과 해탈은 저절로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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